난임부부를 위한 정보/난임일기

[난임일기]06_ 내가 왜 니 아들 동생을 낳아야해?

쏘이_빈 2020. 3. 17.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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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친한 친구들일 수록 격 없이 칼을 꽂는다.

너는 왜 아이를 안낳고 있어? 더 나이 들기 전에 낳아야지~ 요새 우리 애 보는 게 너무 행복해 너도 얼른 낳아 라는 등의 말들은 양반이다.

 

"아이는 축복이야, 너도 빨리 낳아"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그녀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일찍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으나, 3-4개월 정도 임신이 안돼서 고통을 겪었다. 그 당시 나는 생기면 낳아야지~ 하는 마음에 피임은 하고 있지 않았다. 친구가 임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도 공감을 표했다. 

"생각만큼 아이가 잘 생기는 게 아니더라, 맘 편히 먹자~"라는 여유있는 말도 건네곤 했다.

그 친구는 곧 아이가 생겼고, 딸을 낳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둘째의 100일 잔치까지 끝냈다.

그녀가 첫 임신을 했을 때 나에게 늘 하던 말을 "우리 방글이(태명) 친구 만들어줘~"였다. 그때는 나도 아이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웃어넘기곤 했으나, 가끔은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카카오톡에 5명의 고등학교 친구가 있는 단체방이 있는데, 그 방에서 결혼한 사람은 나와 그녀, 그중 아이가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아이는 축복이야~라는 말을 미혼녀 3, 난임녀 1이 들어있는 카톡방에 자주 올리곤 했다.

얄미웠다. 자신이 가진 것들이 최고라는 식의 말투. 내가 속이 좁아진 걸까.. 아니면 그 축복이라는 것이 부러웠던 걸까..

육아는 힘들지만, 아이는 꼭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논리는 계속되었고 35살의 미혼녀 3명은 나보다 더 듣기 싫어했다. 하지만 결혼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어느 노력으로도 잘되지 않는 난임의 고통이었기에, 나는 항상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상처 받았다.

인스타그램도, 카톡 프로필도 온통 아이의 사진인 그녀가 부러우면서도, 얄미웠다.

 

 

"내가 왜 너의 아들 동생을 만들어줘야 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인 그녀는 나보다 2년 후에 결혼했다. 그녀는 첫 임신 시도 만에 임신이 되었고, 본인을 슈퍼 자궁이라 칭하였다. 미국에서 살다가 잠깐 한국에 갔을 때 산부인과 검사들을 받았고, 그때 잠깐 그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임신 사실을 털어놓으며,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뭐가 미안해? 네가 임신한 게?"

"응, 너는 노력하는 것 같은데, 나는 한 번에 임신한 게 미안하네"

정신적 건강을 위해 미국에 다시 돌아온 후, 그녀와 잘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1년이 훌쩍 지나갔고, 그녀가 먼저 연락이 왔다. 육아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한마디 더 하는 걸 잊지 않는다. 어찌나 남의 노산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은지..

"너는 언제 낳으려고~ 우리 이제 노산이야~"

평소 같으면 그냥 하하..😩 하고 대충 덤덤하게 답장하고 말았을 텐데, 그날따라 갑자기 끓어올랐다. 인공수정을 진행하느라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인공수정 진행 사실을 털어놓았다.(적당히 좀 해라- 라는 의미였다)

"나 사실 미국에서 인공수정 중이야, 실패할 확률도 높으니 그냥 주변엔 말 안 하고 있는데 심적 고통이 크네.."

"어머 잘되었다~ 우리 아들 동생 낳아주면 되겠네~"

정말 요 근래 중 가장 폭발했던 날이었다.

내가 왜 니 아들 동생을 낳아줘야 하는 건데? 너 내가 만약에 정말로 실패하게 되면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나한테 이렇게 상처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냐.. 너는 그냥 하는 말이겠지만 100명이 나한테 한 마디씩 하면 나는 100마디가 쌓여서 천 번 만 번 고통받는다. 키워줄 것도 아니고, 돈을 보태줄 것도 아니고, 내 정신적 고통을 가져가 줄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니 아들 동생을 나보고 낳으라고 하는 거야!!!!!!!!!!!!!!!!!!!🤬

 

그냥 하는 말인데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하며, 힘내라고 마음을 편히 먹으면 다 생긴다더라~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녀로부터 들을 말들과, 내가 뱉은 말들로 인해 며칠 동안 괴로웠다. 어떻게 더 마음을 편하게 먹고, 더 내려놓을 수 있을까. 점점 친구들과 연락하기가 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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