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를 위한 정보/난임일기

[난임일기]09_갑자기 시험관 시술(IVF)을 하게되다.

쏘이_빈 2020. 3. 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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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24일차

인공수정을 진행하던 도중 작은 난포들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인공수정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화로 영어를 들으니 다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에스트로겐 수치도 높고, 작은 난포들이 배란될 경우 다태아가 임신될 확률이 높아서 이번 주기는 취소하고 피임을 하라고 하였다.

지난 번에도 이런 식으로 주기를 건너뛰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병원에서도 내가 지난 번 인공지능 시술 때 같은 이유로 주기를 취소하고 그 다음달도 쉰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IVF를 진행하자고 했다.

그럴려면 일단, 조기 배란을 막고 남은 스몰 에그(난포)들을 더 키워서 배란시켜야 한다고 했다.

약국에 처방전을 보내놨으니, 약을 찾으러 가라고 한다.(음.. 우리는 차가 없는데.. 지금은 금요일 퇴근시간이고.. 약국은 한시간 거리야..🤪) 가야지 .. 뭐..

집카를 빌려타고, 약국으로 향했다. 랩실에서 열심히 실험하던 남편이 차를 빌려서 왔다. 

조기 배란 억제제 주사약을 사왔다.

보스턴 난임 약국 

전화로 빌리지 페틸리티 약국(난임 전문 약국)에 전화를 해서 시간 예약을 하고, 신용카드를 이용해서 약을 선결제 했다. 보험에서 커버되고 남은 비용인 50달러가 결제 되었다.  

조기배란을 억제하는 Cetrotide(세트로타이드)와 배란 촉진제인 Pregnyl(프레그닐)을 받아왔다. 이번에는 펜 타입의 고날에프와 같은 약이 아닌, 진짜 주사기가 들어있다. 😱😰🥶🥵

항상 한박스의 약을 타온다.

세트로타이드를 세븐티파이브 용량을 맞으라고 했는데, 내가 분명 다시 물었고 간호사가 그렇다고 했는데, 세트로타이드는 1개가 0.25mg이다.. 영어로 된 설명서를 이리저리 읽어보았는데, 적정 용량이 0.25mg이지 복수번 맞아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럼, 저 주사를 하루동안 세 번 연속 맞으라고 한건가? 아리송하지만, 이미 밤 늦은 시간이라 물어볼 수도 없다. 한국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물어볼까도 했지만, 물어본다한들 알려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을 것 같다.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하겠지.. 이상하게 병원에서 작아지는 나..

일단 간호사가 75유닛이라고 했으니, 세트로타이드 주사를 세 대 맞기로 한다. 직접 배에 놓는 주사이다. 고날 에프로 단련된 주사력을 동원하여 세트로타이드 주사 맞는 법을 검색하고, 약을 섞어서 배에 놓았다. 피곤하다..

cetrotide를 다 맞고 난 흔적

남편은 너무 바빠서 다시 연구실로 돌아갔고, 밤 10시 혼자 배에 주사를 놓는 나. 가끔은 여자라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나를 짓누른다.

 

생리 25일차.

토요일이라 남편과 함께 아침 9시에 병원에 방문했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피검사를 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상담실에서 의사를 만났다.

"고날 에프 75유닛이랑, 세트로타이드 하나"를 맞았냐고 물어본다.

음? 고날 에프? 난포 키우는 주사?? 그걸 맞으라고 했었어? O_O 동공지진;;;; 나는 "세트로타이드 75 맞으라고 해서 그거 세개 맞았다. 내가 다시 확인했는데, 새로운 주사만 이야기하지 않았냐?"라고 답하니, -_- 이 표정. 하하.. 나도 그 표정이야..😑 왜 내가 물어볼때 맞다고 한거야.

다행히 괜찮다고 한다. 대신 오늘 집에가서 다시 난포키우는 주사를 75로 맞아서, 작은 난포들을 더 키우자고 한다. 대신 조기 배란 억제 주사는 그만! ㅎㅎ 

시험관 아기 시술에 관한 동의서를 작성했다. 채취한 난자로 수정란이 만들어질 경우, 수정란을 하나(미국에서는 만 35세 미만은 얄짤없이 하나만 넣어준다) 넣은 후, 나머지를 냉동할 것인지 그냥 폐기할 것인지에 대한 동의, 나중에라도 냉동된 수정란을 실험용으로 기증할 것인지 그냥 폐기할 것인지, 혹시라도 한 쪽 당사자가 잘못되거나 이혼하는 경우 냉동된 수정란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했다.

미국에서 우리의 수정란이 실험되길 원치 않았으니, 나중에 수정란이 필요없게 되면 폐기하기로 했다.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 결과를 토대로 오후에 전화를 받았다. 오늘 난포키우는 주사를 한번 더 맞고, 월요일에 난자를 채취하자고 한다. 떨린다. 진짜 IVF를 하는구나.

어제 못맞은게 조금 아쉬워서, 그날 밤 고날 에프 75유닛 맞은 다음에, 슬쩍 반대쪽 배에 15유닛을 더 놔주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

그리고 첫 엉덩이 주사.

배란 촉진제인 프레그닐을 맞아야 하는데, 이건 엉덩이 주사라 남편이 놓아주어야 했다. 남편은 바늘을 무서워해서 내가 그동안 주사 맞을때도 멀리 도망가곤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는 시간이 왔으니.. ㅎㅎ 덜덜 떨면서 엉덩이 주사를 놔주었다. 

이 자식아, 나는 그걸 매일밤 해왔다고!!!😣🤬😡😈

 

생리 26일차

일요일이라 남편도 집에 있었고, 내일 난자를 채취해야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휴식휴식.. 다행히, 오늘은 배나 엉덩이에 맞아야 하는 주사가 없다.

 

생리 27일차, 난자 채취하는 날

남편과 함께 9시 반에 MGH 난임 센터에 방문을 했다. 남편은 정자를 채취하러 가고, 나는 난자채취를 위하여 옷을 갈아입었다. 속옷까지 다 탈의하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괜히 긴장이 되었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나의 상태를 묻고, 나는 수술복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오른쪽 팔에 링겔을 꽂고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고였다.

 내 차례가 되어 난자를 채취하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위 굴욕의자라고 불리는 산부인과 의자의 침대 버전에 누워서 4-5명의 간호사와 의사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난자 채취 전문 의사라고 하는데, 친절했다. 그런데 괜히 무서웠다. 

링겔을 통해 수면마취를 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산소 호흡기가 씌워졌다. 이걸로 마취가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숨을 서너번 들이키다가 정신을 놓았다. 되는 구나. 하하 😵

 

난자는 4개 채취되었다.

애초에 시험관 시술이 아닌 인공수정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나에게선 4개의 난자만이 채취되었다고 한다. 4개의 난자는 모두 남편의 정자와 수정 과정을 거친 후, 수정란이 생성되면 상태를 확인해서 3일 또는 5일의 배양기간 후에 수정란을 한 개 이식한다고 하였다.

수면 마취로 인해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수정란 2개를 넣어주면 안되냐고 우겼다. 미국 법률상 만 37세 이하는 수정란 1개를 이식하는 것을 권고한다고 단호박으로 이야기하기에 알겠다고 했다.

난자 채취 후 주의사항으로, 술을 먹지 말고, 목욕, 사우나, 격한 운동, 좌욕 금지! 그리고 휴식~~

피가 비칠 수 있지만, 심한게 아닌 이상 괜찮다고 했고, 이온음료를 많이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통증이 너무 심하면 타이레놀을 먹어도 된다고 했다. 이부프로펜, 아스프린, 애드빌은 임신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타이레놀만 괜찮다고 했다.

집에 와서 하루 종일 자고, 파워에이드를 마구마구 먹고, 병원 마트에서 사온 머핀을 먹고, 넷플릭스로 드라마도 봤다. 내심 신났다. 이제 임신하면 이런거 저런거 못할테니 수정란 이식 전에 커피라도 마구마구 마셔야 하나? 와인 한잔은 괜찮나? 하는 생각도 했다.

 

생리 28일차, 수정란은 없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지 않았다.

난자를 채취한 다음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I'm sorry, you have non embryo" 음? 이게 무슨 말이지? 수정란이 0개라고? 엠브리오가 정말 제로냐고 몇번이나 물어봤다. 그렇다고 한다. 수정란 이식을 위해 주었던 지시사항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고, FSH 호르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주사도 맞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렇구나, 시험관 시술을 할 때, 수정란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구나. 다른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입이 너무 쓰다. 마음이 아팠다.

코스트코 온라인 주문으로 와인을 주문해서, 마구마구 마셔버렸다.

그렇게 첫 시험관 시술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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