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08_인공수정 시작 후, 세 번째 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서 생리가 참 늦다. 어쩔 땐 40일, 또 어쩔 땐 50일의 주기, 그것도 불규칙하다. 아니나 다를까, 2번째 주기가 끝난 후 43일이 지난 후에야 생리가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한 주기의 무덤이다. 어느때는 한 달 주기로 생리를 하기도 하니, 혹시나 모를까 하는 기대로 지난 주기를 기점으로 보통사람의 생리주기인 28-30일 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써보기도 하지만, 여지없이 단호박 한 줄이다.

 

어쨌든 몇 개의 테스트기와 몇 개의 한 숨을 거친 후, 다시 생리주기가 시작되었다. 

생리 첫째 날, 난임 병원에 전화를 했고, 3일 차에 방문하여 피검사 및 초음파 검사를 하기로 했다.

 

1. 생리 3일차

아침 7시 반에 병원에 방문해서 피검사 및 초음파 검사를 했고, 난포 키우는 주사인 고날 에프 주사를 매일 밤에 37.5 유닛을 주사받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지난번에는 방학기간 중이라 남편이 함께 와주려고 노력했는데, 논문 발표로 인해 연구실 일정이 바빠지면서 혼자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주기엔 한 번 빼고는 다 혼자 온 것 같다.

그새 무뎌진 건가. 서운한 마음은 없다. 

난임 병원에 오면 분위기가 무겁다. 그리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 남편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진료 시간이 더뎌지게 되면 괜히 눈치도 보인다. 나 혼자 멍 때리는 게 낫다.

그리고, 진료가 끝난 후 진료실에 있는 커피머신으로 핫초코를 내려서, 진료실 앞 의자에서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

 

2. 생리 7일 차

8시에 방문하여 초음파 및 피검사를 했다. 초음파를 할 때는 양쪽 난소 크기를 재고 난소 안에 있는 난포의 개수를 세서 알려준다.

영어로 난임 용어 한번 정리해야겠다. 정말.. 도통 뭐라는지 알 수가 없다... 인공수정 시작하면 바로 애가 생길 줄 알아서, 나 몰라라~ 하라는 대로만 했는데, 미국 병원에서 첫 검사 후 1년이 지나갔다.

오늘도 37.5 유닛의 고날 에프 주사를 맞으라는 전화 안내를 받았다. 양쪽 배에 번갈아가면서 놔야 하는데, 멍청한가... 내가 어제 어느 쪽 배에 놨는지 까먹을 때가 있다. 😩😲

 

3. 생리 9일 차

아침 8시 반에 난임 병원에 방문하여 초음파와 피검사를 했다. 양쪽 난소의 크기는 35mm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난포가 아직도 너무 작다. "매니 스몰스~"라는 말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도대체 다른 여자들은 몇 개의 난포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크게 키우기에 나는 매번 매니 스몰 에그스 일까~😢

저번 주기에 고날 에프를 75 유닛으로 올린 이후, 에스트로겐 수치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일단 3일 동안 고날 에프 37.5 유닛을 더 맞기로 했다.

밤에 배에 주사를 놓는데, 이상하게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피도 나고, 멍도 들었다.

호르몬 주사로 인해 내 배는 멍투성이다.

친한 친구가 나중에 나의 아이에게 다 말해준다고 했다. "너네 엄마는 네가 에그일 때부터 엄청 너를 기다렸단다~"라며ㅎㅎ 꼭 지키렴..

 

4. 생리 12일 차

일요일이라 남편과 함께 8시 45분에 병원에 가서 초음파와 피검사를 했다. 여전히 매니 스몰스. 기대감이 슬슬 떨어지고 불안감이 밀려온다.

날이 너무 추웠지만, 오랜만에 같이 나온 김에 외식을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문 연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병원 앞의 핀 앤 초밥에 가서 돈가스 도시락과 초밥 도시락을 먹고 걸어왔다. MGH 난임 병원이 집에서 가까운 건 맘에 든다. 한국에선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해 어지러운 때였고, 미국은 약간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여서, 미국은 안전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괜찮겠지라며 넘어갔는데.. ( 그 뒤로 엄청난 코로나 폭풍이 미국에 몰아쳤다😨)

병원에서 고날 에프를 50 유닛으로 올려서 3일 더 맞고 방문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5. 생리 15일 차

아침 8시에 병원에 방문했다. 어찌나 에그들이 안 자라는지.. 이맘때쯤에는 하나 정도는 배란하기에 충분한 크기로 자라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불충분하다고 한다.

오른쪽 난소에 4.5mm짜리 2개, 왼쪽 난소에 5mm짜리 1개, 4.5mm짜리 하나가 있으며, 나머지는 매니 스몰스이다. 쭉정이 들인 거지. 😣

병원으로부터 3일 동안 50 유닛의 고날 에프를 맞으라는 안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고날 에프 주사액이 똑 떨어졌다.. ㅠㅁㅠ 남은 것만 맞으면 안 되냐니까, 안된다고 한다. ㅡㅁㅡ 여긴 난임 약국이 멀다고!!!

다행히, 오늘까지는 쪼끔 약이 남아있고(25 유닛), 약국에 전화를 했더니 내일 도착할 수 있도록 배송을 해준다고 했다. 다행이다 정말.

 

6. 생리 18일 차

 8시 반에 다시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했다. 가끔씩 피를 아프게 뽑는 간호사를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럼 정말 서럽다.. 양쪽 팔에도 멍이 가실 날이 없다.

갑자기 미국에서 코로나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보스턴은 그래도 2달 전쯤 중국 유학생 한 명이 전부였고, 그 뒤로는 확진자가 없었는데 뉴욕, 시애틀 등등 미국 대도시들에서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난임 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가 방문한 대부분 동안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코로나가 내 탓은 아니지만,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병원 입구에는 30일 내에 한국에 다녀왔으면 자진신고 + 자진 격리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고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언제 한국 다녀왔냐"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아니, 내가 한 달 동안 꾸준히 왔으면 좀 인식해야 하는 거 아니냐?ㅋㅋㅋㅋ

50 유닛으로 다시 3일 동안 고날 에프를 맞아야 한다.

 

7. 생리 21일 차

오전 8시 반에 병원에 방문했다. 

오른쪽 난소에 10mm 2개, 왼쪽에 11mm 1개, 10mm 1개의 난포가 있다고 했다. 나머지는 매니 스몰스이다. 정말 잘잘한 알들이 많다...

일단 난소에 있는 난포가 최소 16mm까지는 커야지, 배란 촉진제를 통해서 난자를 배란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더듬더듬 서툰 영어로 "나 이렇게 매번 매니 스몰스인데, 괜찮은 거냐?"라고 물어도, 정해진 답이 돌아온다.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괜찮다. 뻔한 말이지만 괜찮다는 말에 작은 위로를 받는다.

일단 10mm 이상의 난포가 보였기 때문에, 오늘 밤 난포 키우는 호르몬 주사를 50 유닛으로 맞은 다음 내일 9시에 다시 병원에 가기로 했다.

 

8. 생리 22일 차

아침 9시에 보스턴 난임 병원에 왔다. 왼쪽에 13mm 1개, 10mm 1개, 오른쪽 난소에 10mm짜리 두 개가 보인다고 했다. 또 한 번 듣는 "매니 스몰스~"

이젠 슬슬 걱정이다. 미국 난임 병원에서는 난자가 3-4개 이상 배란되는 경우, 다태아 임신 방지를 위하여 인공수정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물론 위험성이 크긴 하겠지만, 나의 맘은 간절하다고..

그리고, 그 많은 것들 중 하나라도 수정이나 착상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냐고!!! 사실, 쌍둥이도 괜찮고.. 🥰 망상 보소 ㅋㅋ 하나도 안 오고 있는데, 쌍둥이라니.🤣

오늘 밤 다시 고날 에프 50 유닛을 맞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 병원이었으면 지금 내 상태에 대해서 질문을 마구마구 했을 텐데, 이 짧은 영어로 내 마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9. 생리 23일 차

아침 8시 반에 병원을 갔다. 슬슬 힘이 든다. 

아침에 남편 도시락을 싸주고 병원으로 가려면, 정말 일찍 일어나야 한다. 정작 나는 피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물 한잔 못 마시고 병원에서 한 시간 동안 대기해야 한다.  😥

이젠 난포가 좀 컸으려나.. 싶었지만, 왼쪽 난소에 15mm 한 개,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 잘잘 이들이다. 매니스 몰스 제외하고는 13mm 간신히 넘는 3개.

간호사가 나를 보며, "아깝다~16mm였으면 오늘 트리거샷을 맞았을 텐데"라고 한다.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앗 그럼 내일은 큰 난포를 볼 수 있겠네?"이라는 마음과, "내일 또 병원에 와야 하는 군.." 이라는 마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애들이 크고 있다는 생각에 나름 설렌다.

먼저 임신한 친구가 넌 소식이 없냐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길래 "내가 병원 다닌다"라고 했더니, 이러다 너 한 번에 쌍둥이 낳는 거 아니냐며 자기 친구가 일부러 쌍둥이 낳으려고 병원 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지만 정말 상처 받는다. 언제쯤 초연하게 받아쳐 줄 수 있을까..

 

10. 생리 24일 차

아침 8시 반에 MGH 난임 병원에 갔다. 갑자기 증가한 코로나 환자로 인해 병원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스스로 조심해야지, 심지어 난 아이를 갖으려고 준비 중이니 더 조심해야 한다.

드디어 16mm짜리 난포가 하나 발견되었다. 올레!!

울트라사운드 검사가 끝난 후, 남편에게 신나서 문자를 했다.

큰 에그가 하나 있대! 이제 오늘 밤에 배란 촉진제 맞아야 할 것 같아 히히 자기도 곧 준비해~  

오후 5시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뭔가 불안하다.

에스트로겐 수치도 높고, 스몰 에그(난포)들이 계속 크고 있어서 이번 주기는 캔슬하자고 한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의학 영어를 검색하면서,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취소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럼 시험관 시술로 전환해 볼래?"라는 답을 들었다. 

"yesyes"

"그럼 오늘 약국에 다녀와야 하고, 다른 주사를 또 맞아야 하고, 이 주사도 맞아야 하고, 이러 이러저러 저러 asdqdzxer~~" 다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갑자기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게 되었다. 사실 그게 시험관 시술을 의미하는 거였구나, 라는건 다음 병원 방문 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