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17 _ 너는 노산이니까 꼭 제왕절개해야해.

임신이 안 되는 것만 걱정했기 때문에, 출산에 대한 고통이나 출산 후의 고통 같은 것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 사실 나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몇 년째 생기지 않는 아이를 출산하면서 생기는 고통을 걱정하다니,  하 하 하.

출산한 지 2주 된 친구에게서 온 전화로 인해 하루가 불편해졌다.

"넌 꼭 제왕 절개해. 넌 노산이 자나."

 

사실 난임 상태가 지속되면서, 임신 및 출산한 친구들과 연락을 하는 일이 꺼려졌다. 부러움이 생기는 것도 있지만, 그냥 한마디 물어보는 말들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넌 아이 낳을 생각 없어?"였는데, 그냥 어영부영 얼버무렸더니 언젠가부터는 "이제는 낳아야지~" , "너 그러다가 안 생긴다"로 변했다. 솔직하게 난임을 말한 후에는 "힘내", "맘 편히 먹어", "곧 생길 거야~"라는 힘없지만 뼈 있는 말들이 듣기 싫었다.

 

버릇처럼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말한 친구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에 누워있다. 그전부터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던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

오랜만에 문자 연락을 한 친구가 출산의 고통을 이겨낸 것이 대견하고, 아이가 너무나 예뻐서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리원이 너무 답답하다며 잠깐 통화를 하자며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알고 지낸 지 10년이 다되어가는데 영상통화는 처음이었다. 

친구는 산후에 발생하는 고통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면서, 왜 아무도 자신에게 아이를 낳은 후 생기는 고통에 대하여 말해주지 않았냐며 30분 넘게 분노했고 나는 친구의 고통에 공감을 해줬다. 그러다가, 나의 임신 여부와 준비에 대하여 물어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노력을 하는데도 잘 안되고, 병원도 문을 닫아서 답답하고, 좀 무서워"

 갑자기, 친구가 엉엉 울어버렸다. 나는 가뜩이나 출산으로 힘든 내 친구를 울려버렸다는 생각에 "나는 괜찮아~ 요새 맘도 편하고, 남편하고 사이도 넘 좋아서 즐거워"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버렸는데 ㅎㅎ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너는 출산한 내가 부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언젠가 너도 출산을 하고  지금의 나처럼 고통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퍼. 너는 제발 제왕 절개해, 나는 못했으니까"

"너는 이미 노산이야"

 

세상에..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같은 여자로서 힘겹게 출산을 한 친구의 고통에 공감한다. 그러나 난임으로 인해 고생하는 내 앞에서, 노산을 운운하고, 본인의 출산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엉엉 울다니, 타이밍이 나빴다. 엉엉 울던 친구는 눈물을 멈추더니, 수유하러 가야 한다고 전화를 끊었다.

 

한 동안 멍해진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엉엉 울고 말았다. 그냥 넘길 수도 있었지만, 생리가 끝나가는 시기라 그런가, 서러움이 증폭되었다.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걱정으로 포장된 날카로운 말들이 가슴을 후비고 상흔을 남긴다. 

 

나는 정말 사회가 말하는 노산인 것인가, 지금도 그러한데,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낳을 때쯤은 더 노산이 되어있을 것이고.. 제왕절개나 자연출산을 고민하기 전에, 아이의 태동을 느껴보고 싶은 내 마음은 누가 알아주려나..

 

나는 너의 출산이 부럽지 않다. 

그냥 나는,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가 궁금하고, 난임으로 인한 마음의 걱정이 있는 것뿐인데..

이러저러한 말을 보태도 뭔가 구차한 변명같이 느껴진다.

 

"지금 수유하고 왔어, 나는 이제 애기 밥통일 뿐이야~"

라며 한탄의 문자를 남겨놓은 친구에게 답장을 하지 못했다. 그랬다. 부러우면서도, 짜증났다. 그런 마음을 보여주기가 싫어서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는 좀 더 단단해져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