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부부를 위한 정보/난임일기

[난임일기]28_속 터지는 미국 병원의 처치

쏘이_빈 2021. 1. 26. 03:15
728x90
반응형

처음에 미국에 올 때만 해도 미국은 뭐든 좋아 보였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선진국, 실력이 뛰어난 의사와 최첨단 의료 시스템까지 갖추어진 미국을 상상했다. 아마도, 미드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난임병원을 다니면서 느끼는 점은 "내가 직접 알아보고 요구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일까. 병원만 가면 난임이 바로 해결되는 줄 알았다.

 

1. 1월 8일 1차 진료 연기

12월 8일에 난자 채취를 완료했고, 최종적으로 5일 배양이 완료된 8개의 배아가 나테라로 보내졌다. 나테라는 착상전 배아 염색체 검사를 진행하는 외부 업체이다. (이제는 정말 나테라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 

나테라는 12월 21일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PGS 검사 비용을 내야 검사 결과를 MGH(보스턴 난임 병원)에 보내겠다고 했다. PGT-SR 검사에 대한 얘기는 없고, PGS 검사만 언급했기 때문에 그것도 좀 의아했지만 어쨌든 배아를 볼모 잡힌 몸이니 PGS비용을 지불했다.(pgt-sr 비용은 나중에 보험 적용된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나 테라 직원은 검사 비용을 지불하면 2-3일 내로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받을 수 있다고 했고, 휴일을 고려하여 늦어도 12월 26일에는 병원에 결과가 도착한다고 말했다.  

 => 잦은 유산 또는 난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착상전 염색체 검사 (PGS, PGD, PGT-SR)

 그리고 1월 8일 아침, 요란스럽게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난임 병원이었다. 의사 상담을 연기하겠다고 한다. 이유는 나테라에서 아직 결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 난 이미 돈도 다 냈고, 결과는 2-3일 내로 나온다고 했는데 어째서지.?

일단은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 코로나 때문에 절차가 조금 늦어지나 보다. 

하아, 이런 긍정적인 태도라니, 아직까지도 병원의 말을 무한 신뢰하고, 무작정 따르기만 했던 나를 반성해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먼저 알아보고 요구하고, 집요하게 물어봐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걸 몸으로 부딪혀서 알고 싶지 않았는데, 나의 시간과 맞바꾼 경험이랄까..

 

2. 1월 13일 2차 진료 연기

일주일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불안, 초조, 우울함을 겪어내며 8일이 지나갔고, 다시 진료 날이 되었다.

뭔가 불안한 예감은 틀리질 않는다. 병원에서 또 전화가 왔다. 1월 29일로 진료를 연기하자고 한다. 아직 나 테라에서 결과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응??? 뭐라고???

1월 29일이라고? 난자 채취 후 2주 정도 후에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다고 했는데, 1월 29일이면 2주가 아니라, 거의 2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다. 일단 어버버버버-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난임 병원에 전화를 해서, 아직도 검사 결과가 도착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더니, "우리 탓 아니야~ 나테라에서 보내주지 않고 있어"라는 도돌이표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나테라에 전화를 했다. "돈을 냈지만 검사 결과를 아직 받지 못했다"라고 했다. 여러 상담원을 거치며 지쳐 갈 때쯤, 상담사로부터 "너희 혈액과 유전자 샘플이 필요한데 아직 받지 못했어, 그래서 시작을 못했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 

이건 진짜.. 아니지 않니?

정말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어나더 레벨의 답변.

마냥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정 시간보다 2주나 뒤에 들은 결과가 아직 검사를 못했어라니??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데? 그걸 왜 지금 알려주냐고 하니까,난임 병원에서 안 보내준 거 아니냐며 자기네 탓이 아니라는 말만 한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마음에 말이 어버버버 나와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난임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나테라에서 우리 혈액 샘플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무슨 소리야? 너네가 안 보내준 거 아니야?라고 물었더니 무슨 소리야? 무슨 샘플? 우리는 그런 거 요청받은 적 없는데?라는 도돌이표 답변이 돌아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차분하게 나 테라와 했던 이야기를 전달해주었더니, 나테라와 이야기해보고 알려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면서 너무너무 서러웠다. 작게 흐르던 눈물은 엉엉 소리 내어 울어야 할 정도로 커졌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침대에서 거의 오열을 했다. 내가 만약 나테라에 전화하지 않고, 병원의 연락을 마냥 기다렸다면 1월 말이 되어서도 뭐가 잘못된지도 모른 채 또다시 진료를 연기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3. 1월 14일 난임 병원과 염색체 검사 결과 업체 사이에서의 줄다리기

무슨 일인지, 뭐가 필요한지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던 병원은 역시나 연락이 없다. 미국에서는 정말 쪼아야 말을 듣는데, 그나마도 정말 마구마구마구마구 쪼아야 내 말을 듣는 것 같다. 아무래도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짧은 영어를 이용해 내 맘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병원 관리 사이트를 이용하여 메일을 썼다. 

도대체 그동안 기다린 나의 시간을 어떻게 보상해 줄 것 이냐, 나는 한 달 한 달이 소중한데 왜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냐, 어쩌고 저쩌고, 최대한 빨리 결과를 알려달라, 어쩌고 저쩌고

답메일이 왔는데, "우리는 나테라한테 샘플 요청을 받은 적이 없는데?"라는 황당한 말.

하아, 인내심을 시험하는구나....

그래서 다시 나테라에 전화를 했다. "난임 병원에서는 혈액 키트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너네 뭐 하는 거냐!!!!" 12#!@🤬@$%##🤬^$ 후아 !! 역시나, 자기네 탓 아니라는 나테라.

갑자기 또 엉엉 울어버렸다. 남편은 나를 달래주다가, 이번은 어차피 시작한 거니까 혹시나 빨리 마무리되거든, 한국으로 가자고 한다. 이래나 저래나 나는 빨리 아이가 가지고 싶은 건데, 내가 정말 의욕만 앞선 건가, 근데 임신이라는 게 의욕까지 마구마구 있어야 하는 건가? 지기 싫어하는 내 마음이 더 조급함을 부르는 건가 ㅠ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고, 나만 불행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냥 하루를 빨리 마감했다. 망할 놈의 미국 병원 놈들

결국 연락이 없었다.

 

4. 1월 18일 월요일 연락도 없이 나테라에서 보내온 혈액키트

우리는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택배가 오면 1층에서 보관을 하고, 우리한테 메일을 보내준다. 남편이 갑자기 택배 시킨거 있냐며, 금요일에  택배가 하나 왔었다고 한다. 음 잘 모르겠는데? 하고 내려가니, 세상에.. 혈액 및 유전자 채취 키트가 와있다. 심지어 2개나. 이제서야? 갑자기? 연락도 없이? 그리고 왜 남편은 그걸 금요일에 알았으면서 이제야 받아오는건데? 갑자기 또 화가 복받쳐오르는 구나아아아😫

다시 바로 난임병원에 전화.. "우리 방금 키트를 받았다? 근데 키트에 써있기를 검사할 배아를 받기 최소 일주일 전까지 혈액 채취 키트가 도착해야한다더라.? 이게 무슨일이야 설명 좀 해줘~"라고 했더니, "음~ 내일 아침에 혈액검사하러 와~" 하아... ㅣㅇ라ㅓㄴ임라ㅓㅁㅇ니라ㅓ ㄴㅇ미라ㅓ ㅁㄴ이라 ㅇㄴ미러니망러 ㅣㅏㄴㅇ럼 ㅣ 갑자기 또 빡쳐오르는 군.

이거 제대로 되는거 맞나? 배아 샘플 받기 1주일 전까지 도착해야하는 키트를 무려 한달이 넘어서 보내야 하는데?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5. 1월 19일 화요일 혈액채취 후 페덱스 이용해서 캘리포니아로 전송

아침 7시 반에 병원에 가서 혈액을 채취하고, 입안 세포들을 채취해서 페덱스를 이용해서 나테라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집에 와서 의사한테 메일을 썼다. 왜 난임병원과 염색체 검사 업체 사이에서 우리가 메신저 역할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너희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너무나 크다. 우리도 우리의 스케줄이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려달라. 최대한 우리의 시간을 존중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의사..는 아니고, 간호사의 답변이 왔는데,

일단 미안하고, 다음 일정은.. 2주 정도 후에 나테라로부터 염색체 검사 결과를 받고 -> 그 후에 생리가 시작하면 피임약을 한달 먹고 -> 피임약 복용이 끝나면 냉동배아 이식을 위한 호르몬제를 20일 정도 복용하고 ->이식하자 라는거다. 

음? 최소 3달은 있어야 이식을 하는건데? 원래대로라면, 1월 중순에 이식이 끝났어야 하는데, 난임병원과 나테라의 잘못으로 인해 2달이나 일정이 지체된게 너무나 속상했다. 그래서, 더 빠른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권한이 없다고 의사랑 상담을 하라고 한다.

 

6. 1월 20일 수요일 의사와의 면담

드디어, 의사면담을 하게되었다. 드디어... 하아.. 나를 담당하는 의사는 정해져있지만 의사를 볼때는 오로지 상담할 때 뿐이다. 미국 병원에서는 그날그날의 당직 의사 및 간호사들이 나를 담당하기 때문에, 초음파, 혈액검사, 난자 채취 할때도 나의 담당의사를 본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더 살짝 불만이 있다. 도대체,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는데!! 이렇게 짧은 상담한번으로 청구하는 돈이 400불이 넘는건데.. 

뭐 어쨌든 남편과 함께 zoom을 이용해서 의사와 면담을 하게되었다. 의사가 러시아 사람이라서 억양이 매우 쎄다. 남편은 이제 적응되어서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의사가 내게 꼭 화를 내는 것 같달까?  😞

의사가 향후 일정을 말해주는데 어제 간호사가 이야기한 일정과 같다. 다음 생리 시작하면 피임약 먹고, 에스트로겐 패치 붙이고, 프로게스테론 주사 맞아서 이식하자고~ 그래서, 내가 일 때문에 한국을 가야하니 피임약을 먹지 않는 더 빠른 방법은 없는지 물었다. 난자 채취할때도 이미 충분히 쉬고 있는 상태에서 피임약을 또 먹었기 때문에 더이상 지체하기 싫었다. 

이게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피임약을 먹는게 난소와 자궁을 쉬게하는 데는 더 좋은데 왜 먹지 않겠냐고 하면, 나는 피임약을 먹는 시간 동안의 나의 스트레스가 몸에 훨씬 안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나는 지금 스트레스가 심하다.  😰

하지만, 내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PCOS)이기 때문에, 생리주기도 너무 불규칙하고 호르몬도 불규칙하기 때문에 약을 쓰지 않는 자연주기는 너무 위험할 것 같아서, 약은 쓰고 싶고.... 하아..물론, 급하게 맘 먹고 진행하다가 임신이 안되거나, 유산이 되면 훨씬 큰일일테지만 진척되지 않는 시술로 시간을 허비하는 고통은 정말 나를 갉아먹는다.

 

의사가 변형된 자연 주기(modified natural cycle)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변형된 자연주기는 배란을 억제하는 인공주기와 달리, 약을 써서 배란을 유도하고, 난자가 배란됨으로 인해 자궁 내벽이 충분히 두꺼워지는 경우 배아를 이식하는 것이다. 이 경우 2월 말쯤에 이식을 한다고 한다. 그래봐야 한달 차이긴하네;;; 내가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 겁난다고 하자, 의사는 괜찮다고 하는데 좀 찾아봐야겠다. 역시, 미국 병원에서는 상세하게 묻지 않으면 잘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은 생리를 시작하면 난임병원에 전화해야한다. 나테라에서 결과를 받기 전에 먼저 변형된 자연주기를 시작하고, 배란이 되기 전에 배아 염색체 결과가 나오면 이식할 배아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나는 워낙 주기가 들쭉날쭉해서 언제 생리가 시작할지 전혀 예측이 안되지만, 얼른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길 기다려본다.  😢그리고, 제발 건강한 배아들이 나오길.

728x90
반응형